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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빈치가 된 알고리즘5. 생명은 예술의 재료가 될 것인가 2018.12.18

모름지기 예술가라면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에서 다룰 수 있는 최첨단의 정보를 다루기 마련입니다. 석기시대를 살았던 예술가에게 그것은 ‘돌’이었고 철기시대를 살았던 예술가에게 그것은 ‘철’이었습니다. 문자가 만들어지고 난 다음에 그것은 ‘글’이었고 컴퓨터가 만들어진 이후에 그것은 ‘비트’였습니다. 그렇다면 미래를 살아갈 예술가들에게 주어질 최첨단의 정보는 과연 무엇일까요?

2천 년 전에 살았던 화가라면 그가 다룰 수 있는 최첨단의 정보는 안구에 입력되는 빛이었습니다. 그는 생물학적 눈이 빛을 감지하는 대로 손을 운동시켜 그림을 그렸습니다. 우리가 보아왔던 대부분의 그림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1백 년 전에 살았던 예술가라면 빛을 포착하는 기계인 카메라를 이용하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그림을 그리느라 손을 운동시키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그림 그리기 훈련을 따로 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게다가 빛을 포착하는 능력은 기술의 발전에 따라 향상되었고 마침내 생물학적인 눈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정보를 다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X-ray나 적외선으로 세상을 보는 데에도 익숙합니다.



2천년대를 살아가는 예술가라면 비트를 조작해서 이미지를 만드는 일이 너무 당연하게 생각될 것입니다. 오늘날의 예술가들은 화면에 배치된 비트의 정보를 바꿈으로써 그림을 그린다고 믿습니다. 얼마나 정교하게 조작하느냐에 따라 인간의 뇌는 그것을 현실로 인지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미래를 살게 될 예술가에게 첨단의 정보는 무엇일까요?


이제 예술가들은 화면 속 비트에 만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보다 더 흥미로운 정보가 우리 곁에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바로 분자와 원자입니다. 분자 수준에서 다룰 수 있는 대표적 정보는 바로 유전 정보입니다. 미래의 예술가들이라면 당연히 새로운 생명체를 만드는 일에 도전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애완 생명일 수도 있고 전시를 위한 작품 생명일 수도 있습니다. 예술가 입장에서 보면 돌을 다듬어 다비드상을 조각하는 일이나 분자를 다듬어 생명을 디자인하는 일이나 근본적으로 같은 작업입니다.

DNA11이라는 회사는 각 개인의 DNA 초상화를 그려주는 상품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초상화라는 것이 ‘나’에 대한 표현이라고 한다면 DNA보다 나를 더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정보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실험실에서 437개의 유전자를 가진 인공생명이 합성되었습니다. 2000년 인간 게놈 지도를 해독하며 스타덤에 오른 미국 크레이그벤터연구소의 크레이그 벤터 박사팀은 생명체가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최소한의 유전자로만 구성된 인공생명체 ‘JCVI-syn3.0’ 을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생명체를 디자인하려는 시도가 천재 과학자들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닙니다. iGEM이라는 경진대회에서는 학부생들이 참가하여 합성생명을 만든다고 합니다. 2016년에 있었던 대회에서는 42개국에서 5600여 팀이 참가했다고 합니다. 아직은 연구실에 꽁꽁 숨어있는 정보이지만, 이 정보를 다룰 수 있는 기술이 좀 더 보편화 된다면 예술가들이 참가해서 좀 더 미적인 생명체를 디자인하게 될 것입니다.


IBM은 이미 ‘원자 영화’를 선보였습니다. <소년과 그의 원자A Boy And His Atom>라는 작품에는 개별 원자들이 움직이는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무려 1억 배 확대해서 촬영했다고 합니다. IBM은 예술가 집단이 아닌 공학기술집단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이 기술에서 파생됐다는 것이 새삼 수긍됩니다.


예술의 한계는 결국 어떤 정보까지 다룰 수 있느냐에 따라 결정되는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예술의 한계가 확장되는 초기에는 그 정보를 다룰 수 있는 지식과 노하우를 갖춘 기술집단이 발전을 이끌게 됩니다. 물론 이후에 ‘예술가’들이 참가하면서 미적 측면의 보완이 이루어지기 마련입니다. 예술가들은 형상을 만들었고(미술, 건축), 이야기를 만들었고(종교, 문학), 소리를 만들었고(음악), 최근에는 이 모든 것을 섞었으며(영화), 현재는 이것들을 종합하여 가상의 공간에서 시뮬레이션(게임)하고 있습니다. 이제 곧 가상과 현실은 구분되지 않을 것이며(VR), 가까운 미래에 예술가들은 인공생명을 디자인하게 될 것입니다.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포토샵 같은 소프트웨어에서 확장자가 ‘.dna’인 파일을 아무렇게나 편집하는 일은 현실로 일어날 것입니다. 인공창의는 자연과 인공의 경계, 예술과 과학의 경계를 그렇게 허물어 버릴 것입니다.


인간, 어떤 선택자가 될 것인가?


이 책이 창의에 관해 얘기한 다른 책들과 어떤 차이가 있냐고 묻는다면, 그중 하나로 ‘선택’의 중요성에 대해 논했다는 것을 강조하겠습니다. 창의는 생산하는 것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선택자들이 생산자의 반대편에 서서 생산된 정보 중 일부를 선택함으로써, 창의는 완성됩니다. 인공창의 시대, 생산의 역할은 계속해서 기계에게 위임될 것이고, 인간은 가면 갈수록 선택자의 역할에 집중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그동안 우리가 선택한 것들의 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대량생산된 변기가 예술품이 된 것도, 무엇을 그린 것인지 형태조차 알아볼 수 없는 그림이 예술품이 된 것도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이 그것을 예술로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모든 선택들이 모여 오늘날의 예술을 지금의 모습으로 있게 했습니다. 당연히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게 될 세계는 지금 우리들의 선택의 합으로 구성될 것입니다.

과거에 선택권을 가진 사람들은 소수의 특권층이었습니다. 그시절, 뭔가 잘못된 것이 있으면 선택권을 행사했던 소수의 특권층을 비난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택권은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주어지고 있으며 결국 모두의 것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 개개인의 선택이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기계가 만든 작품도 예술로 선택할 것인지, 인간 판사보다 기계 판사를 선택할 것인지, 인간 운전사보다 자율주행 알고리즘을 선택할 것인지, 이세돌 9단의 수보다 알파고의 수를 선택할 것인지, 자연 번식보다 유전자 조작을 선택할 것인지, 텔로미어telomere를 조작해 죽지 않는 인간을 선택할 것인지, 모든 것은 우리들의 선택에 달렸습니다.

인공창의 시대, 우리가 사는 세계가 이상해졌다고 특권층을 탓하거나 기계를 탓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선택권을 가진 시민이 되었으므로 우리는 우리의 선택에 책임질 준비를 해야 합니다. 핑계를 찾기보다는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정보 생산자가 특권층이든 기계든, 또 그들이 어떤 정보를 출력하든, 그 정보에 대한 생사여탈권은 선택자인 우리들에게 있습니다. 


개개인의 이득을 추구하는 것이 종으로서의 인류에게도 이득이 될 것인지 질문을 던지게 되는 시점입니다. 과연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그 선택의 합으로 만들어지게 될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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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박
연세대학교 작곡과를 졸업하고 예술 주변을 맴돌던 어느 날, 컴퓨터가 그림도 그리고 작곡도 한다는 기사를 접한다. 예술 창작이 예술가의 특별한 능력이 아니라 알고리즘에 의해 수행될 수 있는 보편적 과학활동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게다가 이런 변화가 예술가가 아닌 과학자에 의…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