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아카이브

지식 전달자, 엠아이디 출판사의 컨텐츠 아카이브

#커피 얼룩의 비밀1. 우유 왕관Milk Crown_충돌에 대하여 2018.12.18


상상해보라. 잔잔한 표면 위에 우유 한 방울이 천천히 떨어진다. 충격으로 인해 표면은 출렁거리고 우유 방울이 떨어진 지점 주변에 작은 방울들이 둥글게 튀어 오른다. 그 순간의 모양이 마치 왕관을 닮았다 하여 이를 우유 왕관Milk Crown이라 부른다. 눈 깜짝할 사이에 나타나는 이 모습을 육안으로 보기는 무척 어려워 초당 수천 장 이상 찍을 수 있는 초고속 카메라로 특수 촬영해야만 제대로 관찰할 수 있다. 

유제품 업계는 오래전부터 이 신기한 현상을 광고에 적극 활용하였다. 서울우유는 1979년부터 TV 광고의 마지막 장면에 우유 왕관을 보여줌으로써 신선함을 어필하였다. 이후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뇌리에 강한 인상을 남기며 어린 아이 입가에 묻은 새하얀 자국과 함께 우유 광고를 대표하는 이미지로 자리잡았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영국의 우유 협동조합 밀크 마크Milk Marque도 우유 왕관을 로고에 사용한 사례가 있다. 그렇다면 왕관 현상은 과연 신선한 우유에서만 생기는 것일까? 정답부터 바로 이야기하면 신선하지 않은 우유에서도 왕관 현상은 나타날 수 있다.


우유는 약 88%의 수분으로 이루어진 약산성(pH 6.7) 액체이며, 미생물이 필요로 하는 영양분이 풍부하여 세균이 번식하기에 적합하다. 따라서 우유를 냉장 보관하지 않고 상온에 오랜 기간 방치하면 당분 중 하나인 유당lactose이 세균에 의해 분해되어 젖산lactic Acid을 생성한다. 우유의 수소이온농도pH가 점차 낮아져 산성화되는 과정이다. 이때 등전점isoelectric point이라 부르는 특정 pH(약 4.6) 이하가 되면 응고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러한 이유로 장기간 상온에 노출된 우유는 엉기고 뭉쳐서 신선한 우유에 비해 약간 걸쭉해지지만 그 정도가 심하지 않다. 다시 말해 꿀이나 샴푸같이 끈적끈적한 정도, 즉 점도viscosity가 매우 높은 액체는 분자간 잡아당기는 힘이 강하여 왕관 현상이 잘 일어나지 않지만, 우유를 며칠 보관하는 수준에서 응고에 의한 점도 변화는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왕관 현상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왕관 현상은 상온에 방치된 우유는 물론 물, 음료수, 커피 등 점도가 낮은 액체라면 무엇에서든 관찰할 수 있다. 따라서 우유 왕관이 나타난다고 해서 신선한 우유라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이제 왕관이 만들어지는 순간을 물리학 관점에서 자세히 들여다보자. 빗방울처럼 낙하하는 우유 방울의 운동 에너지는 공기 저항 등에 의해 일부 사라지고 나머지는 충돌에 사용된다. 충돌하는 순간 미세한 소리와 열 등으로 일부 에너지가 추가로 사라지고, 남은 에너지가 충분히 클 경우 주변의 우유는 분자 사이의 응집력을 이겨 내고 위로 솟구쳐 오른다. 이때 위로 계속 떠오르려는 관성력과 아래로 잡아당기는 중력 사이의 균형이 깨지면 표면장력에 의해 작은 우유 방울들이 만들어지는데, 이를 전문 용어로 위성 액적satellite droplet이라 한다.

이 방울들이 순간적으로 왕관 모양을 만들고 움푹 파인 중심 방향으로 에너지가 전달되면 웅덩이가 다시 메워진다. 마지막으로 왕관 중심에서 한 방울이 위로 튀어 오른다. 이러한 과정을 코로나 스플래쉬corona splash라 하는데 코로나는 라틴어로 왕관, 스플래쉬는 첨벙거림을 뜻한다. 그렇다면 모든 액체 방울이 충돌할 때마다 항상 왕관 모양을 만들어 낼까? 왕관의 형성 여부는 방울의 크기 및 낙하 높이와 끈끈한 성질을 뜻하는 점성 사이의 상관 관계에 의해 정해진다.


다시 말해 방울이 크거나 낙하 높이가 높으면 운동 에너지가 표면 에너지를 극복하여 왕관이 형성되지만 반대로 낙하 높이가 낮거나 액체의 점성이 충분히 강하면 운동 에너지가 표면 에너지를 이길 수 없어 왕관이 생기지 않는다. 예를 들어 점성이 강한 꿀이나 케첩은 어지간히 높은 위치에서 떨어뜨려도 왕관 현상이 발생하지 않는다.

미국 워싱턴대학교University of Washington 대기과학과 피터 홉스Peter Hobbs 연구진은 1967년 세계적인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얕은 액체 위의 물방울 튐Splashing of Drops on Shallow Liquids’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게재하였다. 연구진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직경 3mm의 물방울의 낙하 높이가 10cm~2m 범위 안에 있을 때, 위성 액적의 숫자가 높이에 따라 선형적으로 증가한다고 한다. 즉 낙하 높이가 1m일 때 왕관 모양을 만드는 위성 액적이 25개라면, 2m에서는 약 50개가 생성되는 것이다. 여기서 위성 액적의 개수가 많을수록 낙하 높이가 높음을 유추할 수 있다.

과학자들은 다양한 현상에서 나타나는 여러 변수의 상관 관계를 간단히 표현하기 위해 차원이 없는 숫자, 무차원수dimensionless number를 도입하였다. 액체 방울의 충돌에는 무차원수로 표면장력에 대한 관성력의 비율을 의미하는 웨버 수We, Weber number가 쓰이며, 다음과 같이 표현된다.

d.JPG.jpg

(ρ는 액체의 밀도, V는 액체의 속도, L은 특성 길이, σ는 표면장력)


따라서 웨버 수가 작으면, 즉 관성력이 표면장력을 이기지 못하면 액체 방울이 표면에 그대로 묻히고 웨버 수가 어느 정도 이상 되어야 왕관 모양을 형성한다. 이처럼 무차원수를 이용하면 밀도, 속도, 길이, 표면장력을 일일이 언급하지 않고도 웨버 수 하나로 간단하게 왕관의 형성 조건을 설명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방울이 액체 표면에 떨어지는 경우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액체가 아닌 고체 표면과 방울이 충돌할 때는 어떤 현상이 발생할까?

뜨거운 프라이팬에 떨어진 물방울이 바로 증발하지 않고 동그랗게 맺혀 통통 튀는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직관적으로 표면의 온도가 높을수록 물방울은 빠르게 증발하여 금방 사라지리라 예상되지만 실제는 그와 다르다. 100°C 프라이팬 위의 물방울은 몇 초 지나지 않아 완전히 증발하지만 200°C의 표면 위에서는 오히려 물방울의 수명이 더 길어진다. 충돌 직전 물방울의 일부가 살짝 증발하며 물방울과 프라이팬 사이에 얇은 수증기 막을 형성하는데, 이 막이 단열재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프라이팬의 열이 수증기 막을 거쳐 물방울에 전달되기 때문에 100°C일 때보다 오히려 열을 적게 받아 천천히 증발하며, 이를 막 비등film boiling이라 한다. 따라서 표면 온도가 낮을 때는 뜨거워질수록 열전달량이 증가하다가 끓는점이 지나면 감소하고 특정 온도 이상이 되면 다시 증가하는 3차 함수 형태의 그래프가 그려진다.


경험 많은 요리사들은 이미 이 사실을 알고 있어 뜨거운 프라이팬에 물방울을 떨어뜨려 대략적인 온도를 판단하기도 한다. 이 현상은 1732년 네덜란드 과학자 하만 보하브Herman Boerhaave가 처음 발견하였고, 이후 독일 의사 요한 라이덴프로스트Johann Leidenfrost가 심도 있게 연구하여 라이덴프로스트 효과Leidenfrost effect라 불린다. 끓는점보다 높은 온도 중 열전달 계수가 가장 낮은, 즉 물방울이 가장 천천히 증발할 때의 온도를 라이덴프로스트 점Leidenfrost Point이라 하며, 물의 경우 약 200°C 내외이다.

표면 온도가 높을수록 더 많은 열이 전달될 것이라는 직관에 상반되는 이 현상은 뜨겁게 달궈진 철판 위에 물에 젖은 손을 올리는 차력의 원리이기도 하다. 열이 손에 직접 전달되는 100°C의 철판이 수증기 막을 형성하는 200°C 철판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 영하 200°C의 액체 질소에 손을 넣는 차력도 온도만 반대일 뿐 동일한 원리이다. 손의 온기로 인해 액체 질소 일부가 기화하여 손 주변에 질소 막을 형성 하고 그 막이 초저온으로부터 손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앞서 설명한 대로 뜨거운 철판 위의 물방울은 얇은 수증기 막으로 인해 바닥과의 마찰이 거의 없어 작은 힘에도 쉽게 움직인다. 프라이팬을 살짝만 기울여도 물방울이 매우 빠르게 굴러가는 이유이다.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 공동 연구진은 2006년 물리학 학술지 『피지컬 리뷰레터스Physical Review Letters』에 ‘가열된 톱니 모양 표면 위에서 스스로 움직이는self-propelling 물방울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다. 비대칭 톱니 모양의 표면에 따라 물방울의 형상이 달라지고 그에 따른 압력 차이가 발생하여 그 힘으로 이동한다는 원리이다.


영국 배스대학교University of Bath 물리학과 케이 다카시나Kei Takashina 연구진은 한 단계 더 나아가 톱니 바퀴 모양과 표면 온도를 변수로 물방울의 움직임을 분석하여, 물방울이 중력을 거슬러 경사진 표면을 외력 없이 올라가도록 만들었다. 또한 동일한 원리로 물방울이 혼자 미로를 탈출하는 동영상을 만들어 화제가 되었다. 이러한 연구들은 소량의 액체를 자유자재로 이동시켜야 하는 랩온어칩Lab-on-a-chip, 잉크젯 인쇄, 분사 냉각 등 여러 분야에 응용된다.


한편 MIT 기계공학과 크리파 바라나시Kripa Varanasi 교수 연구진은 물방울의 충돌을 시간이라는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았다. 물방울이 표면에 낙하할 때 충돌 시간을 최소화하는 초소수성 무늬를 개발하 여 『네이처Nature』에 발표하였다. 초소수성superhydrophobicity은 물방울이 넓게 퍼지지 않고 동그랗게 맺히는 성질을 말하며, 연잎 위의 물방울에서 흔히 볼 수 있어 이를 연잎 효과lotus effect라 한다. 충돌 시간이 짧을수록 물방울이 표면에 거의 남지 않아 깨끗하고 건조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이러한 특성을 자동차 유리, 건물 외벽, 우산 등에 적용하면 비가 올 때 먼지 같은 오염물을 쉽게 씻어낼 수 있으며, 핸드폰 케이스를 초소수성으로 코팅하면 핸드폰을 물에 빠뜨려도 물이 내부로 쉽게 침투하지 못한다. 또한 초소수성 표면은 방수뿐만 아니라 얼음 형성을 방지하는 방빙anti-icing 효과도 있어 높은 해발고도를 운항하는 항공기 날개 표면에 얼음이 달라붙지 않도록 하는 목적으로도 응용될 수 있다. 액체 방울과 고체 표면의 충돌은 연소 공학에서 매우 중요한 연구 주제이기도 하다. 연료가 분사될 때 실린더 내의 피스톤과 충돌하며 여러 개의 작은 방울로 나뉘어지면 표면적이 넓어져 연소 효율이 상승하기 때문이다.

관련도서

커피 얼룩의 비밀
흐르고, 터지고, 휘몰아치는 음료 속 유체역학의 신비
세상을 거대한 실험실로 탈바꿈하는 비밀 사소한 질문에서 시작하는 탐구의 세상

관련인물

송현수
1982년 대전 출생.
어린 시절부터 진지하고 심오한 과학보다는 가볍고 말랑말랑한 과학에 흥미를 느꼈다.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과학상자를 조립하다가 장난감이나 놀이기구 설계처럼 유쾌한 공학을 꿈꾸며 2001년 서울대학교 기계항공공학부에 입학하였다. 하지만 난해한 수식으로 포장된 …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