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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얼룩의 비밀2. 기네스 폭포Guiness Cascade_거품에 대하여 2018.12.18


전 세계 150여 개국에서 하루 1,000만 잔 이상 판매되는 250년 전통의 아일랜드 흑맥주 기네스. 폭발적인 판매량만큼이나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거품처럼 넘쳐난다. 

창시자 아서 기네스Arthur Guinness는 1759년 12월 31일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의 한 양조장을 계약금 단돈 100파운드(약 15만 원), 연 임대료 45파운드(약 7만 원)에 무려 9,000년간 임대 계약하여 기네스 맥주를 탄생시켰다. 그로부터 10년 뒤에는 아일랜드 최초로 양조장 직원들에게 의료 보험과 연금을 제공하는 등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복지를 시행하였다. 1920년대에 직원들은 회사에서 치과 진료를 비롯한 각종 의료 혜택을 받았으며 장례비 및 교육비 지원, 독서실 이용, 간식 제공뿐만 아니라 매일 2파인트(약 1L)의 기네스를 받았다.


기네스는 주조 공정의 품질 관리를 위해 양조업계 최초로 통계학자를 고용한 회사이기도 하다. 여기에 흥미로운 일화가 전해진다. 영국 통계학자이자 양조 기술자 윌리엄 고셋William Gosset은 1899년 기네스에 입사하여 효모 투입량 등 그동안 경험에만 의존해오던 양조 기술에 통계학 기법을 적용하여 품질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켰다. 고셋은 연구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하려 하였으나 경쟁사들에게 그 비법이 알려질 수 있다는 이유로 회사 측에서 만류하자 ‘student(학생)’라는 필명으로 이를 몰래 발표하였다. 이후 고셋이 30년간 몸담았던 업계를 떠난 다음에야 그와 student가 동일인임이 밝혀졌고, 후세에 실명 고셋보다 필명 student가 더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통계학에서 정규 분포의 평균을 구할 때 사용하는 스튜던트 t-분포Student’s t-distribution는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탄생하였다.

기네스는 직원 복지와 품질 관리 외에 마케팅에서도 단연 돋보였다. 1954년 아서 포셋Arthur Fawcett은 기네스 역사상 가장 기발하고 낭만적인 행사를 기획하였다. 5만 개의 유리병에 ‘수천 킬로미터를 지 나 당신에게 도착한 메시지, 기네스는 좋은 맥주입니다.’라고 적힌 쪽지를 담아 태평양, 대서양, 인도양에 흘려보냈다. 창사 200주년을 맞이한 1959년에는 무려 15만 개의 병을 바다에 띄웠고, 그 병들은 전 세계 해안가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그리고 병을 주운 사람들이 기네스에 연락하면 기념품을 선물하였다.

지금도 간혹 발견되는 유리병을 두고 세계에서 상영 시간이 가장 긴 광고라는 별명이 붙었으며, 기네스가 건강에 좋다는 점을 강조한 문구 ‘기네스는 당신 건강에 유익합니다Guinness is good for you’는 여전히 회자된다. 참고로 미국 위스콘신대학교University of Wisconsin 순환기내과 존 폴츠John Folts 교수가 2003년 미국심장학회American Heart Association에서 발표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하루에 1파인트의 기네스를 마시면 혈전 생성을 방지하여 심장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기네스 홍보 담당자 휴 비버Hugh Beaver는 각종 분야에서 세계 최고 기록만을 모아 정리한 『기네스북The Guinness Book of Records』을 제작하였다. 어느 날 사냥 도중 어떤 새가 가장 빠른가에 대한 궁금증이 생긴 비버는 당시 기자였던 노리스 맥허터Norris McWhirter, 로스 맥허터Ross McWhirter 형제에게 자료 수집과 출간을 의뢰하였다. 1954년 처음 출간된 기네스북은 이듬해 영국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고, 1956년 미국에도 출간되어 7,000부 이상 판매되었다. 또한 『기네스북』은 그 자체로도 세계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데,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저작권 있는 연속 출간물로서의 기록이다. 하지만 『기네스북』은 2008년 캐나다의 유통업체 짐 패티슨 그룹Jim Pattison Group에 매각되어 더 이상 기네스에서 발간하지 않는다.

기네스 맥주 탄생 250주년인 2009년부터 매년 9월 넷째 목요일에 ‘아서 기네스의 날Arthur's Day’ 기념 축제가 열린다. 재미난 점은 사회자가 정확히 오후 5시 59분에 ‘아서를 위하여To Arthur’라며 건배를 외치는데, 그 시간이 17시 59분인 이유는 아서 기네스가 양조장을 계약한 1759년을 기념하기 위함이다. 이처럼 기네스는 자사 맥주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큰데,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세계 각국의 유명 맥주 회사 사장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행사가 있었다. 각자 음료를 주문할 시간이 되자 하이네켄 사장은 당연히 하이네켄을, 버드와이저 사장은 버드와이저를, 칭타오 사장은 칭타오를 주문했는데, 마지막으로 기네스 사장은 콜라를 주문하였다. 모두 의아하여 왜 기네스를 마시지 않냐고 묻자 기네스 사장이 대답했다. “다들 맥주를 안 마시길래.” 기네스의 역사와 전통 그리고 맛에 대한 자신감에 빗대어 생겨난 농담일 것이다.


애호가들을 사로잡은 기네스의 매력은 쌉싸름한 맛과 크림처럼 부드러운 거품이다. 먼저 쌉싸름한 맛에 대해 알아보자. 대부분의 맥주는 싹을 틔운 보리, 즉 맥아malt를 볶아서 효모와 함께 발효하는 과정을 거친다. 구수함을 넘어선 기네스 특유의 강렬한 쓴맛은 맥아를 볶는 도중 우연히 깜빡 졸아서 살짝 태운 맥아로부터 탄생하였다는 믿기 힘든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또한 맥주의 향긋함을 담당하는 덩굴 식물 홉의 양이 일반 맥주의 두 배 수준이고 항상 일정한 맛과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250년 넘게 동일한 효모를 사용한다. 그리고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기 위하여 소량의 효모를 금고에 보관하고 단 두 명 만이 그 열쇠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다음으로 부드러운 거품은 맥주 맛에 지대한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거품 그 자체만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맛은 동일하더라도 거품이 빠진 맥주를 상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기네스는 거품부 터 다른 맥주들과 차별화된다. 이산화탄소 비율이 높은 일반 맥주들과 달리, 기네스는 질소와 이산화탄소의 비율이 7대 3으로 질소가 매우 많다. 대기의 78%를 차지하는 질소는 색, 맛, 냄새가 없으며 상온 에서 비활성으로 과자 봉지의 충전재 등 식품의 선도를 유지하는 데 사용된다. 또한 이산화탄소에 비해 용해도가 낮기 때문에 맥주 밖으로 쉽게 빠져나와 미세한 거품을 형성한다. 이 거품은 입자가 매우 고 

와 입술에 닿는 촉감이 벨벳처럼 부드럽게 느껴진다. 아이스크림을 만들 때 공기 함유량이 많을수록, 즉 작은 기포가 많을수록 입 안에서 부드럽게 녹는 것과 유사하다.

최근에는 맥주뿐 아니라 커피에도 무색 무취의 질소를 주입하여 부드러운 거품을 즐길 수 있다. 일명 질소 커피nitro coffee는 미국 포틀랜드의 커피 전문점 스텀프타운stumptowns의 바리스타 네이트 암브러스트Nate Armbrust가 기네스를 마시다가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2013년에 처음 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쿠베 커피의 창립자 마이크 맥킴Mike McKim이 처음 선보였다는 설도 있다). 초기에는 이산화탄소로 시도하였지만 부드럽고 풍성한 거품이 만들어지지 않아 질소로 대체되었다. 또한 기체의 용해도는 온도에 반비례한다. 따뜻한 사이다에는 탄산이 잘 녹지 않듯이 질소 커피는 시원하게 마실 수밖에 없다. 액체의 온도가 올라가면 내부 압력 역시 상승하여 기포가 모두 밖으로 배출되기 때문이다.


온도가 올라가면 내부 압력 역시 상승하여 기포가 모두 밖으로 배출되기 때문이다. 호주 화학자 헤더 스미스Heather Smyth에 따르면 커피가 차가울수록 시트러스 향은 점차 사라지고 초콜릿과 블랙커런트 향이 강해진다고 한다.

기네스 거품은 물리학 법칙을 위배하여 마치 폭포처럼 아래로 쏟아지는 것 같이 보이는데, 이를 기네스 폭포Guinness cascade라 한다. 물리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많은 연구를 수 행하였다. 유체역학 역사상 가장 중요한 공식 중 하나인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Navier-Stokes equations을 세운 영국 물리학자 조지 스토크스George Stokes. 그가 19세기에 처음 폭포 현상을 발견한 이후 이 난제는 100년 넘게 풀리지 않았다.


마침내 1999년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학교University of New South Wales 클라이브 플레처Clive Fletcher 교수가 유동 해석 프로그램 ‘플루언트FLUENT’를 이용하여 유리잔에서 흑맥주의 기포가 순환하는 현상을 명쾌히 설명하였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잔 벽면과의 마찰에서 자유로운 중앙의 거품이 부력에 의해 위로 솟아오르며 맥주를 함께 끌어올린다. 그리고 표면까지 상승한 맥주는 벽 쪽으로 이동한 후 아래로 가라앉으며 거품을 끌어내린다. 마치 냄비에 물을 끓이면 중앙의 뜨거운 물이 위로 상승하여 수평으로 이동한 후 가장자리에서 하강하는 순환과 비슷하다. 커다란 거품은 부력이 충분히 크기 때문에 맥주의 유동과 상관없이 가라앉지 않고 버틸 수 있지만 직경이 0.05mm보다 작은 거품들은 부력이 작아 맥주에 휩쓸려 바닥으로 쏟아져 내린다.


큰 바위는 흐르는 강물에 꿈쩍도 하지 않지만 모래는 쉽게 떠내려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실제로 기네스 거품은 중앙에서 위로 올라가 벽면에서 아래로 내려오지만 투시를 하지 않는 이상 중앙을 볼 수 없고 직접 관찰할 수 있는 것은 벽면을 타고 내려오는 거품뿐이다.

2012년 영국 리메릭대학교University of Limerick 수학과 연구진은 「왜 기네스의 거품은 아래로 가라앉는가Why do bubbles in Guinness sink?」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실험과 시뮬레이션을 통해 바닥이 좁은 잔 속의 거품이 아래 방향으로 향하는 이유를 상세히 설명하였다. 비밀의 열쇠는 바로 기네스 거품의 성분과 맥주잔의 모양이다. 일반적으로 거품은 크기가 클수록 부력의 영향을 많이 받아 위로 상승하고, 작을수록 상대적으로 부력의 영향이 작다. 다시 말해 다른 맥주들보다 크기가 매우 작은 기네스의 질소 거품은 위로 뜨는 경향성이 약하여 쉽게 가라앉는 것이다.


또한 기네스 폭포를 관찰하려면 파인트pint, 즉 위쪽이 넓고 바닥은 좁은 잔에 따라야 한다. 만약 거꾸로 위쪽이 좁고 바닥은 넓은 잔anti-pint을 사용하면 거품이 가라앉는 현상을 관찰할 수 없는데 이는 보 이콧 효과Boycott effect로 설명된다. 

1920년 영국 병리학자 아서 보이콧Arthur Boycott은 혈액의 혈구가 수 직관보다 기울어진 관에서 더 빨리 가라앉음을 밝혔다. 반대로 액체에 뜨는 입자나 거품은 기울어진 벽면의 형태에 따라 다르게 거동한다. 파인트처럼 위쪽이 넓은 잔에서는 거품이 상승하고 가라앉는 거품들이 남은 벽면의 옆 공간을 채울 수 있는 반면, 위쪽이 좁은 잔에서는 거품이 상승하며 벽면에 더욱 가깝게 밀착하기 때문에 다른 거품들이 차지할 공간이 없다. 따라서 기네스 폭포를 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위쪽이 넓고 바닥이 좁은 잔을 사용해야 한다.

그렇다면 액체의 종류와 상관없이 어떤 잔에서도 아래로 가라앉는 기포가 존재할까? 액체막으로 둘러싸인 기체 덩어리를 기포라 하고 반대로 기체막으로 둘러싸여 아래로 가라앉는 액체 덩어리를 반기포anti-bubble라 한다. 주방용 세제를 물에 희석하여 둘로 나눈 다음 한 쪽의 액체를 반대편에 쏟아 부으면 순간적으로 주변에 공기막이 형성되어 반기포가 만들어진다.

2003년 벨기에 리에주대학교University of Liege 연구진은 초고속 카메라를 이용하여 반기포의 생성과 소멸 과정을 촬영하였다. 표면장력이 작은 두 액체가 갑작스럽게 섞일 때 초기에는 작은 진폭의 섭동 perturbation이 나타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진폭은 선형적으로 증가한다. 반기포는 아래로 가라앉으며 점차 해파리 모양을 띠고 마침내 리히트미어-메쉬코프 불안정성Richtmyer–Meshkov instability 원리에 의해 버섯 모양의 와류vortex와 한 개의 기포를 남기며 소멸한다.


이 원리는 미국 물리학자 로버트 리히트미어Robert Richtmyer가 이론적으로 예측하고 러시아 물리학자 예프게니 메쉬코프Evgeny Meshkov가 실험으로 증명하였다. 반기포 원리는 공장 굴뚝에서 나오는 오염 물질을 제거하는 공정에 사용되며, 공기막 대신 다른 액체로 대체할 경우 체내 약물 투여에도 응용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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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수
1982년 대전 출생.
어린 시절부터 진지하고 심오한 과학보다는 가볍고 말랑말랑한 과학에 흥미를 느꼈다.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과학상자를 조립하다가 장난감이나 놀이기구 설계처럼 유쾌한 공학을 꿈꾸며 2001년 서울대학교 기계항공공학부에 입학하였다. 하지만 난해한 수식으로 포장된 … more